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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의 힘

관음죽 2009. 5. 21. 12:44

           묘사의 힘

                             <안도현>

  어떤 시가 언어예술로서의 기본적인 꼴을 갖추었는가의 여부는 묘사의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물에 대한 묘사 능력으로 시의 품격을 판단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묘사는 시쓰기의 출발이면서, 또한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세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자가 아니라, 세상을 세밀하게 그리는 자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을 최대한 정확하고, 절실하게 언어로 그릴 책임이 있다. 독자는 묘사된 사물이나 현상을 찬찬히 따라가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상상력을 발동시키게 된다. 뛰어난 언어 감각으로 묘사의 힘을 발휘하고 있는 젊은 시인의 시를 먼저 한 편 읽어보자.



폭설주의보 내린 정초에
대관령 옛길을 오른다
기억의 단층들이 피워올리는
각양각색의 얼음꽃

소나무 가지에서 꽃숭어리 뭉텅 베어
입 속에 털어넣는다, 火酒―

싸아하게 김이 오르고
허파꽈리 익어가는지 숨 멎는다 천천히
뜨거워지는 목구멍 위장 쓸개
십이지장에 고여 있던 눈물이 울컹 올라온다
지독히 뜨거워진다는 건
빙점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
붉게 언 산수유 열매 하나
발등에 툭, 떨어진다

때로 환장할 무언가 그리워져
정말 사랑했는지 의심스러워질 적이면
빙화의 대관령 옛길, 아무도
오르려 하지 않는 나의 길을 걷는다
겨울 자작나무 뜨거운 줄기에
맨 처음인 것처럼 가만 입술을 대고
속삭인다, 너도 갈 거니?

― 김선우 , <대관령 옛길> 전문



시의 화자가 걷는 <대관령 옛길>을 좇아가다 보면 생생한 언어 감각이 토해내는 상승과 하강의 반복 이미지에 매료되고 만다.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듯하다가 <붉게 언 산수유 열매 하나 발등에 툭, 떨어>지듯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그 무엇 때문에 독자는 몸을 떠는 것이다. 이러한 시적 긴장감은 묘사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묘사형 시에서만 긴장감이 팽팽하게 살아 있는 것인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묘사의 반대편에 있는 것을 서술 혹은 진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진술형 시에서도 얼마든지 긴장을 늦추지 않는 좋은 시가 있다. 그런데 진술에만 의존하는 시는 쓸데없는 감정 표현을 자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문학지망생들이 습작기에 범하기 쉬운 오류 중의 하나가 진술에다 시를 맡기는 일이다. 이러한 시에서는 종종 넋두리 형태의 표현을 발견할 수 있다. 진술의 형태에서 독백적이며, 주관적인 측면을 잘못 이해한 탓에 지나친 자기 감정의 노출이 심화되면서 시를 개인의 고백 차원에 머무르게 하는 예가 종종 있다.

이번 주에 읽은 두 분의 시 『관철동 은행나무집』과 『어머니』는 소박하고 구체적인 대상을 말하고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적 진술이 개인적인 감정 표현에 머물러 있다. 그러다 보니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상을 벗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시의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진의가 독자의 심금에까지 가 닿지 못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는 配軋 씨의 『관철동 은행나무집』은 <이런 얘기다>로 시작해서 <그런 얘기다>로 끝난다. ‘~얘기다’ 라는 말이 이 시에서 일곱 번이나 나오는데 시인의 의도가 읽히지 않은 상태로 정말 그냥 그런 ‘얘기’에 그치고 만다. 이 말이 시에 리듬감을 일정하게 부여하면서 잠시 시선을 잡아당기기는 하지만, 오히려 그게 내용 없는 포즈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주는 까닭이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 보기 바란다. <윗도리는 초봄에 이미 매연과 고기 굽는 연기에 찌들었으되/ 아랫도리에 방금 돋아 오르는 새 잎/ 그 불고기 집에서 나오는 상추보다 더 싱싱하여/ 참 신기하게 보았다>는 구절처럼 은행나무를 좀더 세밀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최명근 씨의 『어머니』는 순정한 시다. 하지만 시의 순정함이 곧바로 시의 감동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치밀한 계획과 구성에 의한 묘사의 도움 없이는 시가 읽는 사람의 가슴을 파고들기 힘들다.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무리 없이 잔잔하게 이야기하는 것에만 그쳐서는 안된다.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가 <힘겹게 끌던 손수레 위에> 실린 <알타리와 설익은 열무배추>처럼 구체적인 묘사로 좀더 언어의 틈을 촘촘하게 만들어야겠다. 그래야 <빳빳해진 만원의 추억이 살아>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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