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세상/유승도
어제보다 푸른 오늘이다
수백 아니 수천 마리의 벌레를 잡아 죽이고 늦은 아침을 먹는다
포도 잎 뒷면에 다닥다닥 붙은 노랗고 검고 하얀 벌레들
털이 송송 난 벌레들을 장갑 낀 손으로 꾹꾹 누르거나 슥슥 문질러서 으깨 죽일 때, 벌레들은 갉아먹었던 포도 잎을 몸 밖으로 내보내며 제 몸 속의 푸르름을 증명한다 하얗거나 노랗거나 검었던 몸빛은 그저 허울이었노라고, 몸속은 푸른빛이라고, 그것이 내 빛이라고, 먹는 것의 빛이 곧 내 몸빛이라고
벌레들의 소리를 온몸으로 들으며 나는 내 몸을 바라본다 나도 꾹 눌러 터진다면 푸른빛으로 감싸일까? 누군가 나를 쓱 문지른다면 말없이 으깨져 푸른빛이 될 수 있을까?
푸르른 것들을 입안으로 넣으며 창밖의 푸른 세상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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